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꿈을 꾸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그아르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어떻게 전혀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느냐고?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잠을 자며 꾸는 보편적인 꿈과는 다르다. 게다가 다그아르는 보편적인 꿈도 꾸지 않는다. 누군가 다그아르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다그아르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대꾸할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도 꿈을 꿀 수 있는가?"

  출렁, 하고 물결이 일었다. 다그아르는 재빨리 낚시대를 끌어올렸지만 돌아온 것은 끊어진 낚시줄 뿐이었다. 분명 정신을 빼놓고 중얼거리는 동안 물고기는 도망갔으리라. 다그아르는 메마른 혀를 쯧쯧 차며 다시 낚시대를 드리웠다.

  주변은 조용했다. 불모의 땅이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긴 하지만 지금 다그아르가 있는 곳, 푸른 오아시스의 주변은 그나마 활기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가끔 물가를 들락거리며 첨벙대는 무쇠턱거북을 빼놓고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도, 불모의 땅에서 가장 시끄러운 종족들인 켄타우로스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다그아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굶주린 대머리독수리가 아닌 이상 그 어떤 생물이 시체를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두 발로 걸어다니는 시체를.

  찌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간 순간 다그아르는 낚시대를 잡아챘다. 큰 놈이 걸렸는지 낚시대가 둥글게 휘었다. 다그아르는 능숙한 솜씨로 낚시대를 끌어올렸다. 하루에 한 번씩만 판매하는 튼튼한 낚시대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낚시대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다그아르는 좀 비싸더라도 튼튼한 낚시대를 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마침내 낚시바늘에 꿰인 물고기가 퍼덕이며 치솟았다.

  "……음?"

  물고기를 낚시바늘에서 빼내던 다그아르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물고기가 눈이 세 개였던가? 다그아르는 썩다 만 손가락으로 쓰고 있는 녹빛 고글의 배율을 조정했다. 자신이 죽은 지 수십만년쯤 지나 모든 생물들이 한 단계씩 진화했다면, 물고기에게 눈이 세 개씩 있는 것도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그아르는 죽음에서 다시 깨어난지 얼마 안 된 싱싱한 언데드였고, 아직 눈이 세 개 달린 물고기가 헤엄치며 돌아다닐 시대도 아니었다. 다그아르는 일단 그 돌연변이 물고기를 어망에 집어넣었다. '크로스로드에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군.' 다그아르는 낚시도구를 마저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물고기가 눈이 세개든 다리가 달렸든 다그아르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그아르는 언데드였고, 보통 살아있는 자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도 뱃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물론 맛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모든 언데드들이 체험하는 끝없는 굶주림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일단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그아르는 그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를 먹기 전에 잠시나마 관찰-분석해보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그의 직업과도 관련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마법사와 기계공학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거고 하는 사람이 좋으면 하는거니까 별 문제는 없지만, 세상의 보편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마법사와 기계공학자는 꽤나 안어울리는 매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극과 극을 달리는 분야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을 꼽을 수 있나니, 그것이 바로 탐구정신이다. 뭐 다른 직업에 탐구정신이 결여되어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파고들기 좋아하는것이 마법사와 기계공학자일 것이다. 물론 재봉술의 거장이 바느질 한땀한땀에 서린 고도의 집중력과 탐구정신에 대해 역설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공통점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다그아르였다. 그는 생전에 마법사였기 때문에 마법을 다룰 줄 알았고, 죽은 뒤엔 기계공학에 관심을 가져 여러 이상한 것들 - 주로 폭발물 - 을 만들어 왔다. 마법사이자 기계공학자인 그의 탐구정신은 세 개의 눈이 달린 물고기라는 희한한 생물을 무심히 먹어치워버리는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다그아르는 그 물고기를 들고 크로스로드를 돌아다니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 세개 달린 물고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반나절을 돌아다닌 결과 다그아르가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여관으로 돌아온 다그아르는 뼈만 남은 턱을 딱딱 부딪히며 돌연변이 물고기를 꺼내보았다. 그 멍청한 물고기는 세 번째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그아르는 한숨을 내쉬며 여관주인을 부르려 손을 들었다.

  "이 멍청아, 너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이고생이잖아!"
  "그 쇳소리 나는 입 다물지 않으면 네 신상을 까버리겠어! 그때도 지금처럼 시끄러울 수 있을까, 냄새나는 시체?"

  다그아르는 테이블 저 쪽을 쳐다보았고 곧 소리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블러드엘프 하나와 언데드 하나가 소리를 질러가며 싸우고 있었는데, 둘 다 꽤 먼곳에서 온 여행자 같았다. 너덜너덜한 가죽과 사슬옷을 입은 그들은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악을 쓰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덩치 큰 타우렌 여관주인도 섣불리 말리지 못할 기세였다. 다그아르는 끌끌 혀를 차며 앞에 놓인 맑은 샘물잔을 집어들었다. 그 때, 다그아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다그아르는 인상을 쓰며 녹빛 고글의 줌을 조절했다. 싸우는 블러드엘프의 허리춤에 매달린 그것은 눈이 세 개 달린 토끼의 가죽이었다.

   다그아르는 다짜고짜 점멸하여 블러드엘프와 언데드 사이로 뛰어들었다.

  "으앜!"
  "뭐야, 이건!"

  주변의 놀라 자빠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아르는 블러드엘프의 허리춤에서 대롱거리는 토끼를 가르키며 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어디서 난거지?"
  "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뛰어들어서 이러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오만."

  다그아르는 대꾸하지 않고 고글의 톱니를 돌려가며 가방에서 눈 세 개 달린 물고기를 꺼내놓았다. 그것을 본 블러드엘프는 헉 하고 숨막히는 소리를 냈고, 옆에 있던 언데드는 두리번거리며 토끼와 물고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그아르는 물고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말했다.

  "이건 푸른 오아시스에서 잡은 물고기요. 보다시피 보통 물고기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지. 그 토끼가 어디서 잡힌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물고기에게 영향을 미친 무언가와 동일한 것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하는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블러드엘프는 땀을 흘리며 자신의 토끼를 보다가 이윽고 토끼를 물고기 옆에 내려놓았다. 다그아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녹색 고글 바깥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블러드엘프가 입을 열었다.

  "……이건 푸른 오아시스 주변에서 잡았습니다."

 

  "혈기사 더팔라딘입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다들 꽤나 직설적인 이름이라 합디다."
  "엔미볼사쥬디. 도적님이시다."
  "마법공학자 다그아르요. 보다시피 언데드지."
  "나도 언데드야 짜샤, 모를 줄 알았냐?"

  더팔라딘은 급히 쥬디의 입을 막으려 했으나 저지당했다. 어이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다그아르에게 한숨을 내쉬며 더팔라딘이 말했다.

  "애가 좀 또라이인데 성격도 더럽습니다."
  "그럴 것 같더군."
  "뭐야, 이 자식아!"
  "닥쳐, 조용히 좀 해."

  다그아르는 방금 전 소동의 연장전이 계속되는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테이블을 두드려 그들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마법공학자다운 신속함으로 빠르게 본론을 끄집어냈다.

  "이 돌연변이들에 관해서……."
  "근데 마법공학자가 뭐냐? 처음 듣는 소린데."

  쥬디가 말을 끊었다. 마치 발차기로 적의 캐스팅을 끊는 듯한 도적다움이었다. 더팔라딘은 이제 뭐라고 하기도 힘들다는듯 어께를 으쓱여보였고 다그아르는 픽 웃으며 마법공학자의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관한 지식들을 쥬디에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기계공학을 하면 나처럼 된다."

  더팔라딘은 벙찐 표정을 짓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쥬디를 보고 그만 멍해짐에 걸려버렸다. '그런 설명으로 이해가 된단 말이야?' 3초간 느려져있던 더팔라딘의 생각이 다시 돌아오자 다그아르는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돌연변이들에 관해서 누군가에게 설명 비슷한거라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군. 하지만 내가 반나절동안 크로스로드를 돌아다녀서 얻어낸 거라고는 오직 이 물고기가 돌연변이라는 사실 하나뿐이야. 그 쪽에서는 뭔가 알아낸 거 없나?"
  "글쎄요. 우린 애초에 크로스로드를 지나려던게 아니었거든요. 단지 좀 사고가 있어서 가까운 마을을 찾다가……."
  "이 멍청이가 절벽에서 떨어져서 멀리까지 갈 수가 없었거든."

  더팔라딘은 쥬디를 한번 노려보고, 쥬디가 낄낄거리는 것에 분노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렸다.

  "……뭐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잘 모릅니다. 이 토끼도 그냥 오아시스가 있길래 잠시 들렀는데 쥬디가 잡아왔더라구요. 어디 가서 이상한 거나 주워오는 버릇이 있어서."
  "토끼가 뭐 어때서."
  "비정상이잖아. 눈알이 세 개나 달렸는데 그게 안 이상하냐."
  "멋있잖아."
  "뭐?"

  쥬디는 낄낄거리며 토끼 시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멋있다고."

  다그아르는 눈이 세 개 달린 생명체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언데드의 정신구조를 한번 분석해보고싶은 욕망을 느꼈다. 더팔라딘도 그런 기분을 느꼈지만, 그는 좀더 저속한 표현을 선호했다.

  "진짜 머리를 갈라서 뇌를 직접 한번 보고 싶다."
  "뇌는 봐서 뭐하게."
  "뇌가 들어있기는 한지 궁금하거든……악! 물지 마, 질병 옮는다!"

  결국 테이블의 분위기는 다그아르가 오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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