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의 초한지1~8(고우영만화대전집 20~27) / 고우영, 우석출판사, 1992)



작년에 아버지가 헌책방에서 책을 대량 매입하신 적이 있다.

김용의 영웅문(고려원)과 고우영의 열국지(자음과모음) / 초한지(우석)

그리고 정체불명의 한중합작 삼국지만화세트...이건 뭔지 잘 모르겠음.



(위엄돋는 자태)



왠일로 만화를 가득 들고오시길래 아니 웬 만화? 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도 고우영의 위대함은 알고 계신듯 하였다.

하긴 평소에 만화 이야길 꺼내면 가장먼저 고우영부터 언급하시긴 했음.



(열국지. 춘추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활동한 각종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지의 눈 째진 아자씨는 진시황.)


열국지는 휴가나왔을때 다 읽었고

전역한뒤로 책을 잘 안 보다가 이번에 시골로 내려오게되어 할일이 없던차에

책상에 초한지가 올려져있기에 이거나 봐야겠다 하고 제일권을 폈는데...


책장을 덮어보니 제팔권인 것이어라. 아니 어느새 마지막권까지 읽었는고? 기이한 일이로다...

만화라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느낌이다.

사실 권당 분량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책 두께는



이만함. 별로 두껍지 않다.(왜 하필 티슈인가?)


사진을찍고보니 생각났는데

이 책은 초한지만 따로 나온 것이 아니라' 고우영만화대전집'의 일부이다.

총서는 초한지를 비롯하여 삼국지, 수호지, 일지매, 열국지, 서유기로 구성되어있다고 하는

이거나 한번 모아볼까 생각중. 1992년에 나온 물건이라 이제 구하기 힘들 듯 하긴 하다.

자매품으로 '한국고전 극화전집'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더 구하기 힘들듯...


특히 이번 기회에 고우영 삼국지를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

아버지도 구하려 했으나 구하지 못했다고 함.





(구하 구하 하니까 구하라가 생각나서 구하라)


...가 아니라



(출처는 네이버 책 검색)



...요로코롬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고우영 만화들을 팔고 있지만

(사실 네이버 책에서 캡쳐한 것이지만서두)

책은 역시 헌 책이 좋도다. 읽히지 않은 빳빳한 종이의 질감이 왜그리 낯선지...

요번에 초한지 읽을때도 손때 묻을 걱정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책은 페이퍼북이 나오지 않는것이 아쉽다.

페이퍼북은 아무렇게나 사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괜찮을텐데

책 한권을 사서 볼래도 무겁고 딱딱하고 비싸기까지하니 이거야 원 불호不好로다.

책을 단지 소장하려고 사는것은 본디 책이 가진 본질과는 동떨어진 행동일 것일진대

어쩌겠는가, 국내 출판시장이 그러한 것임을 허헣허



(뭣보다 만화는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 맛)



각설하고, 고우영 초한지를 읽어본 감상은 이러하다.


전개는 물 흐르는 듯 하고 인물은 개성이 뚜렷하며

묘사는 허투른 것이 없고 먹과 선이 컷을 질주하니 장면이 살아 숨쉬듯 하다.

이건 상투적인 이야기고

특히나 고우영의 만화답게 센스와 기지의 해학이 넘치는 점이 매력적이다.


눈여겨 본 점이 있다면, 극의 큰 흐름에 크게 관여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컷 안에서 지극히 만화적인 소도구들을 서슴없이 사용하는데

어찌보면 세계관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을 요소들이 여러 차례 나옴에도

이야기는 초한지의 맥을 그대로 이어 가는 것이다.


...뭐 대단한 것인 양 이야기했으나 딱 보면 별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진시황이 공터 앞에서 자신의 무덤을 세울 계획을 말하려 할 때

신하들이 추측하기를 공터에다 콘도, 아파트, 컨트리클럽을 만드는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장면이나

작중 인물들이 전화기나 무전기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거나

군사들이 밥을 지어 먹을 때 버너와 코펠을 이용한다던지

한신이 전차를 처음 선보일 때 탱크 드립을 치는 유방이라던지

왕릉이 유방의 부모를 데려올 적에 초군의 추격을 벗어나

국태 마마를 모실 가마를 대령하자 의심하여 내리지 않던 유방의 모친이

卞秋(벤츠...)를 준비했다고 하자 당장에 뛰어내리는 장면 같은 것이 그러하다.



(卞秋가 좋긴 좋은가보다)



그러나 만화를 그릴 때 이러한 요소들을 적재 적소에 자연스럽게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놀라우리만큼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센스가 일정한 몇몇 대목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아울러 그 색을 드러내게 하는 일이야

오죽 어려운 일이겠는가?


일기토를 관람하는 군졸의 감탄에서, 한漢의 장군 하후영을 대면하는 한신의 대답에서,

를 떠난 진평이 위무지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 123의 대사에서

쉴새없이 고우영 특유의 그것이 휘몰아침을 느낄 수가 있다. 그냥 쩐다.



(한신의 위엄)



그렇다고 고우영의 초한지가 마냥 가벼운가? 그렇지도 않다.

단순한 컷 하나에서 초한을 이끌던 인물들의 절절함이 느껴지니 어찌된 일인가?

전반적으로 가벼우면서도 그 안에 예리한 날을 품은 듯 한 전개가 이어지다

무거울 때는 확 하고 분위기를 잡아 흐름을 주도하는 필력이 범상치 않음이다.



(우미인의 죽음. 유방이 꽤나 안타까워했더랬다.)



마지막 권에 이르러 사면초가에서부터 항우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컷 중에서

버릴만 한 컷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원래 초한지 원작의 내용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 내용을 훨훨 살려내는 고우영의 필력이 더해지니

매우 오랜만에 만화를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저 마지막 컷이 한 챕터의 마지막 컷이다. 그래서 임팩트가 큰 컷이었는데...

사진 기술이 조악하여 제대로 살려내지 못함. 원통하다.)



만화 안 본지 꽤 되었는데(한때 만화가 한다고 설쳤던 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간만에 괜찮은 작품을 읽어 기분이 매우 好하여

마음에도 없던 글을 써 올리게 되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여기저기 고친부분도 보이고, 책 표지에 떡하니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마친 책' 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삭제판은 아닐 것으로 사료되나

92년에 나온 책인데 어지간하였겠는가...이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도다.

(애시당초 그시적에 무삭제판이 나올리가 없으리라)


어찌되었건 요상하게 꼬인 일정 때문에 본의아니게 집에서 빈둥거리는 예비군-1년차에게

비생산적인 생산적 활동을 할 계기라도 마련해준 책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谢, 志!

(중국 고전이니까 한자로)






아 참 그리고 내용은 뭐 다들 초한지 정도는 읽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한줄요약하자면 유방 이 개새끼 ^^ㅗ


결론은 고우영 초한지 읽어라 두 번 읽어라 세습해서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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